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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치밥

제대로 시한같은 날! 햇살이 냉기를 덮기엔 아직 이른 시각이다. 사람의 시간을 앞서가는 새들이 마을 골목길에 분주하다.   아침을 깨우는 이 새들이 모이는 곳은 마을 회관 옆 족간이 할매네 감나무다. 골목 담벼락을 벗삼아 자라고 있는 감나무 가지에 새들이 모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깐치밥 때문이다. 그것도 겁나게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침이 되면 새들은 자기만의 목소리로 성찬에 환호하고 그나마 조용하던 시골 골목이 살아 숨쉬게 되었다. 감나무 주인인 족간이 할매는 재작년 겨울에 돌아가셨다. 읍내에서 설비 일을 하는 둘째 아들이 가끔 들르기는 한다는데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 해에도 알뜰히 감을 수확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한 눈에 보기에도 감이 많이 달려 있다. 그렇게 된 사연으로 살아 있는 새들은..

잡감/지금 2024.12.20

엄마 #7

'어머니! 올 봄에 집 마당에다 양봉을 해봤는데 벌꿀이 제법 채취 되었습니다. 벌꿀 팔아서 번 돈으로 라디오를 한 대 사서 보냅니다.' 70년대 초 넷째 아들네와 같이 살고 있는 어머니에게 둘째 아들이 선물로 라디오를 보내왔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함께 동봉한 편지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넷째 아들은 나의 아버지다. 물론 둘째 아들은 나의 큰아버지다. 큰아버지는 아이들 가르치는 것을 평생 업으로 하셨지만 농사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양다래 양자두 등 과수도 가꾸고, 텃밭도 일구셨다. 게다가 그 해에는 처음으로 양봉을 해보셨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보다 수확이 좋았나 보다. 그래서 그 기쁨을 제일 먼저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으셨던 것은 아닐까? 그런 연유로 생긴 라디오를 통해 새로운..

잡감/가족 2024.12.03

가을

절마당으로 이어지는 토톰한 은행잎 깔개를 밟으며 걷습니다. 맑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느릿한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옮기는 것은 이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더 없는 호사입니다.  그런데 걱정없는 저 자줏빛은 어디에 있을까요? 햇볕 가득한 신원사 절마당에 尋紫愚驢 하나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가을비                                                       전인권가을비 소리도 없이 내리네거리마다엔 은행잎이 노랗게약속은 자꾸만 맴돌고 맴돌다걱정 없는 저 자줏빛이 부러워나는 어디쯤 온 걸까어느새 한 해가 지났나말하고 말하고 말하고그녀는 어디에 있을까그때처럼 비는 내리는데비 비 비

잡감/지금 2024.11.20

다니야

마히강(Mahi Rive)은 인도 서부를 지나 캄베이만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숫타니파타 다니야경은 이 마히강변에서 소를 키우는 다니야(Dhaniya)와 부처님이 주고 받는 이야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수만 마리의 소를 키우고 젖을 짜는 이 부러울게 없는 축산업자와 욕망의 불이 꺼진 성자는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요? 소치는 사람 다니야가 말하기를 저는 벌써 밥도 다 해 놓았고 소젖도 다 짜 놓았습니다. 마히강 기슭에서 마누라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지붕에는 이엉을 덮어 놓았고 등불을 밝혀 놓아 편히 지낼만 합니다. 그러하니 하늘이여 비를 내리려거든 내리소서. 부처께서 말하기를 분노가 사라진 나는 이미 완고함의 틀에서 벗어났습니다. 마히강 기슭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있습니다. 지붕에 이엉을 덮지 않아도 요란한 ..

잡감/불교 2024.11.07

엄마 #6

Democracy의 어원이 민(Demos)과 통치(Kratos)의 합성어라는 것은 상식이다. 군주나 귀족이 아닌 민(民)에 의한 지배를 나타내는 Democracy라는 단어를 왜국에서는 민주주의라고 번역하였고 우리도 그 번역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갑골문에 민(民)자는 사람의 눈 아래 열십자가 그려진 모양으로 되어있다. 칼로 사람의 눈을 찌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한 쪽 눈만으로도 노동이 가능하기에 다른 한 쪽은 의도적으로 멀게하였다 한다. 한 쪽 눈을 멀게 하여 저항하거나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 유래로 보자면 民은 확실히 피지배자를 이르는 글자이다. 그 천한 신분의 눈 먼 백성(民)이 지배자이고 주인인 것이 Democracy(民主主義)이다. 엄마가 눈이 아프다고 한다...

잡감/가족 2024.08.11

비(卑)

비(卑)라는 글자는 여러가지 뜻이 있지만 대체로 신분이 낮은 경우를 이를 때 쓰입니다. 갑골문에서 유추해 보면 밭 전(田)자와 또 우(又)자가 결합된 형태의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한자로드(路)에 따르면  이 글자는 큰 부채를 들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주인을 모시는 시종의 신분을 나타내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낮다' '천하다'라는 신분의 위치를 나타내는 글자가 지금은 뜻이 더하여져 '비루(鄙陋)하다' ' 저속(低俗)하다' '천(賤)하다' '왜소(矮小)하다' '쇠(衰)하다' 등의 의미로도 쓰입니다. 요즘 주목받는 인물 몇 명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예전에 별을 달고 있었던 이도 있고, 지금 이마에 번쩍이는 별을 달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신들이 큰 부채를 들고 모시는 이가 끝까..

잡감/지금 2024.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