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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은 늘 두렵다. 하지만 어찌보면 그 두려움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무명(無明)이 새로운 시작의 동력일지도 모른다. 삶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시도하는 새로운 시작은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 크기나 무게감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도전이고 삶의 에너지다. 당분간 앞으로만 가야겠다.  마치 회로의 다이오드처럼, 수도관의 체크밸브처럼 거꾸로 가지 않을 터이다. 아니 거꾸로 간다는 워딩 자체를 나의 사전에서 지워버리겠다. 잘 될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야겠다. 6월 21일 아침 이 노래를 듣는다. 원곡은 1971년 까트린 드뇌브(Catherine Deneuve) 주연의 '슬픔이 끝날 때'라는 영화의  주제가인 미셸 폴라노프(Michel Polnareff)의 Ca n'arrive qu'aux autres (남들한테..

잡감/지금 2024.06.21

금성관

중국의 고대지리서적(古代地理書籍) 삼보황도(三輔黃圖, 作者佚名) 육권(卷之六)에 이런 내용이 있다. 劉向於成帝之末 校書天祿閣 專精覃思 夜有老人著黃衣 植青藜杖 叩閣而進 見向暗中獨坐誦書 老父乃吹杖端 煙然 因以見向 授五行洪範之文 부족한 식견이지만 이 내용을 내 나름으로 해석해 본다. '유향은 한나라 성제 말기에 국가 장서각인 천록각의 교서가 되었다. 그는 정성을 다하여 깊이 생각하고 일에 전념하였다. 어느 날 밤 황색 옷을 입고 청려장을 짚은 노인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어둠속에서 홀로 글을 외고 있는 것을 바라보던 노인은 청려장의 끝부분을 후 하고 불었다. 그러자 청려장에 불이 붙어 환해졌고 노인은 서경(書經) 홍범편 오행의 문장을 가르쳐주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청려장의 려(藜)라는 글자는 명..

잡감/지금 2024.06.16

유달산

왜인들은 우리 땅을 침략한 후에 그들이 존경한다는 구카이(空海)의 '시코쿠 88개소 영장순례의 길'을 개항장(開港場) 목포(木浦)의 유달산(儒達山)에서 재현하려 하였다.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으니 유달산 일등바위 아래에 마애(磨崖) 각석(刻石)된 구카이 상과 부동명왕(不動明王) 상이 바로 그것이다. 밀교(密敎)에서는 부동명왕(不動明王, Acalanātha)을 대일여래(大日如來, vairocana)의 화신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왜국의 불교는 주술의 힘을 강조하는 밀교를 매우 중요시 하는데, 당나라에 유학하여 밀교를 배운 뒤 왜국에 이를 들여 온 이가 바로 구카이다. 그  구카이를 종조(宗祖)로 하는 왜국의 진언종(真言宗)계열이 바로 밀교에 속하는 종단이다. 토착 왜인들이 발호하고 주술의 힘이 어른거리는..

산에 오르다 2024.06.15

대전사

이른 아침 주왕산 능선을 타고 용연폭포에 들렸다가 주방(周房) 협곡을 따라 내려와 절집에 이르렀습니다. 마당이 넓직한 이 곳 절집 이름은 대전사(大典寺)입니다. 이름이 대전이니 부처님 말씀을 커다란 법이라고 표현한 것일까요? 아니면 대전을 간행했거나 그 간행물을 소장하고 있었다는 것일까요? 아니랍니다. 그게 아니고 대전(大典)이라는 이름은 전설 속 인물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전설을 좇아 보면 당나라 주왕( 周王)으로 불리운 주도(周鍍)라는 인물이 산 이름의 주인공이고, 그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 주희( 周曦)가 절 이름의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당(唐)나라 덕종(德宗) 연간 또는 당나라 후기(後期)가 반란의 시대였던 것은 맞지만 이 시기에 주도(周鍍, 周王)라는 인물이 반란을 일으..

잡감/불교 2024.05.27

신안사 대광전

돌아다니기 좋은 날입니다. 마침 오늘이 구담(瞿曇) 선생 생일이라 떡 쪼가리라도 얻어 먹을 수 있을까 하고 신안사(身安寺)에 들렀습니다.  오랜만에 찾아 온 절집은 예전에 비해 크게 다를게 없습니다. 다만 생일잔치에 부조하러 온 사람들로 법당 안밖이 분주하고, 절마당에 늘어 선 천막에는 비빔밥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수다에 시끌벅적합니다.  군수라는 이가 권속들을 여럿 거느리고서 지나가고, 민중의 지팡이를 자처하는 조직의 우두머리는 노인들에게 지팡이를 선물합니다. 극락전 앞마당은 오색등을 주런이 매달아서 자못 잔치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그나마 사람들 발길이 덜한 가람 가장 윗쪽의 대광전(大光殿)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맑은 햇살과 함께 비로자나불이 내려다 보고 있는 대광전 앞 마당에 서서 건물 기둥에 걸린..

잡감/불교 2024.05.15

바래봉

Monier-Williams Sanskrit-English Dictionary, 1899에 pātra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맨 윗줄에 a drinking-vessel, goblet, bowl, cup, dish, pot, plate, utensil &c. 이라고 되어있다. 우리말로는 그릇이라고 번역하면 적절할 것 같다. 이 pātra라는 단어가 중국으로 건너와서 발다라(鉢多羅)라는 한자어로 음사되어 쓰이게 된다.  오등회원(五燈會元)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편 등의 각주에 보면 발(鉢)을 梵云鉢多羅 此云應器 應量器 略云鉢也 又呼鉢盂 卽華梵兼名也라고 하였다. 해석하자면 이렇다. 산스크리트어로 발다라(鉢多羅)는 이 곳에서는 응기(應器) 응량기(應量器)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며, 줄여 쓰면 발(鉢)이라고 한다. ..

산에 오르다 2024.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