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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貞儀) 여사(女史)

원나라 간섭 시기에 충렬, 충선, 충숙, 충혜, 충목왕 등 다섯 임금을 섬기며 고려 후기 정계를 대표하는 대신으로 활동했던 국재(菊齋) 권보(權溥)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溥'라는 글자는 대개 '부'라고 읽지만 '보'라고도 읽습니다. 안동권씨 한글판대동보를 열람해 보면 '권보(權溥)'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1262년에 태어나 1279년 우리나이로 열여덟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그는 충선왕 5년인1313년에 영가군(永嘉君)에 봉해졌으며, 충숙왕 대에는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으로 진봉됩니다. 권보는 다섯 아들과 네 명의 딸을 두었는데 본인 뿐만 아니라 큰아들 준(準)은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둘째 종정(宗頂)은 광복군(廣福君), 셋째 고(皐)는 영가군(永嘉君), 넷째 재(載)는 계림부원대군(鷄林府院大君..

잡감/가족 2026.10.18

내소사 동종(銅鐘)

태평양 전쟁 시기 연합국의 경제 제재로 일제는 심각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무기를 만들 쇠붙이가 절실했던 일제는 한반도 전역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금속 회수 작전을 펼치게 되는데, 애국 헌납(愛國獻納)이란 허울 좋은 이름으로 포장된 강제 징발을 자행한 것이다. 강탈이나 다름없는 금속 공출(金屬供出)은 공장이나 학교 뿐만 아니라 가정에도 적용되었는데, 일제는 놋그릇이나 숫가락 젓가락 같은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살림살이까지 거두어 갔다. 철제 울타리와 가구, 학교나 종교시설의 동상, 민가의 가재도구, 심지어 박물관에 보관된 금속 무기류 등의 유물까지 일제는 무차별적으로 수탈하여 전쟁 물자로 투입하였다. 특히 총알과 포탄의 탄피(彈皮)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구리를 확보하기 위해 일제는 우리 민가의 놋그..

절에 가다 2026.10.16

보석사

조선시대 울산판관, 사헌부 지평 등을 지낸 현덕승(玄德升 1564 ~ 1627)이라는 인물이 있다. 충무공 이순신이 1545년생이므로 현덕승과는 나이가 열아홉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두 사람은 무척 가까운 사이였던 것 같다. 충무공과 현덕승이 가까운 사이였음은 그들간에 오간 서찰이 증명하고 있다. 충무공은 현덕승의 형 현덕성(玄德成)의 아들인 현건(玄健)과도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충무공이 이들에게 보낸 일곱통의 편지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국보로 지정된 이 서찰들은 충무공이 현씨 집안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지냈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일곱통의 서찰 중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는 세 통이고, 나머지 네 통은 현건에게 보낸 것이다.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593년 7월 16일 보낸 편지가..

절에 가다 2026.10.16

개암사 울금바위(禹金巖)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으로 유명한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고려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글을 남긴 한문학의 거장이다. 고려 신종 3년 서른세살의 이규보는 전주목(全州牧)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 때가 서기로 치면 1200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826년 전이 되겠다. 그가 맡았던 공식 직책은 '전주목 사록 겸 장서기(全州牧 司錄 兼 掌書記)'이다. 사록(司錄)은 목(牧)에서 행정 실무와 감사, 인사를 담당하는 직책이고, 장서기(掌書記)는 관아의 각종 문서를 작성하고 관리하는 직책이다. 따라서 이규보가 이 직책에 임명되었다는 것은 그가 뛰어난 문장력의 소유자임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규보는 그의 표현에 의하면 특이한 이야기나 볼거리가 있으면, 곧 시(詩)로써 거두고 문(文)으로써..

절에 가다 2026.10.10

태화산 광덕사 변소깐

2019년 7월 발행된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라는 책에서 김용옥은 철학을 배우던 대학 3학년 때 불교를 제대로 이해해 보겠다며 고향에 있는 광덕사로 출가한 적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도올은 몇 달간의 광덕사 생활에서 겪었던 독특한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변소깐에서 처음 접한 반야심경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처음으로 반야심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습개도 '변을 보다가 밑씻개 용으로 변소깐에 어지럽게 널려 있던 종이 쪼가리에 적혀진 글자의 의미를 추측하고 추론하면서' 라고 한다. 도올은 충격에 빠진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반불교다! 이것은 불교가 아니다! 이것은 불교의 모든 논리를 근본에서부터 파괴하는 전혀 새로운 논리다! 불교를 불교다웁..

절에 가다 2026.10.01

낙조대

'1979~1987 추억 들국화'라는 음반이 있습니다. 1987년 여름 무렵에 발매된 이 음반은 전인권과 허성욱이 중심이 되고, 들국화 멤버들이 세션으로 참여하여 만든 음반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음반 시장은 LP와 카세트 테이프가 주력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LP음반의 자켓은 단순한 포장재 이상의 다양한 의미와 역할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 자켓의 전인권 모습을 너무 좋아합니다. 앨범 자켓을 보면 지금의 전인권과는 너무 다른 모습인데요, 청바지에 하얀 셔츠를 입은 홀쭉이 전인권이 해맑게 웃고 있습니다. 곁에 있는 젊은이는 들국화 원년멤버인 키보디스트 허성욱입니다. 허성욱은 이 앨범을 발매하고 나서 10년 후인 30대 중반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

산에 오르다 2026.09.18

실상사 편운화상탑

삼국사기 견훤조에 따르면, 견훤은 서기 900년 지금의 전주인 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의자왕의 오랜 원한을 풀겠다고 선언한다. 후백제를 세운 것이다. 그러나 후삼국 초기 신라를 군사적으로 압도하며 주도권을 잡았던 견훤의 후백제는, 정권의 기틀이 채 다져지기도 전에 발생한 기득권 호족들과의 마찰과, 아들 신검의 쿠데타로 인한 갈등으로 건국 36년 만에 허망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한편 통일신라 말기 왕실 사람들이나 진골 귀족들과 밀착하여 극도로 세속화되어 버린 교종(教宗) 중심의 불교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으니, 당나라에 유학하여 조사선(祖師禪)을 접하고 돌아온 선종(禪宗) 승려들이 전국 명산에 선종 사찰을 창건한 것이다. 이러한 바람을 타고 백제시대부터 미륵신앙의 뿌리가 매우 깊은 호남지역에 ..

절에 가다 2026.09.16

수좌 명진 다비(茶毘)

도올이 '진짜 중'이라고 일컬었던 명진(明盡)이 입적(入寂)하였다. 인연이 다한 육신을 벗고 본래 나온 자리로 돌아가는 도반(道伴)의 영결식에서 도올은 '영산의 춤'이라는 추도시를 발표하였다. 도올은 추도시에서 '그렇게 늠름한 코끼리처럼 가고 싶은 대로 숲을 노닐더니만 어쩌자구 나보다 먼저 가신단 말이오'라며 애도하고 있다. 늠름한 코리리처럼 가고 싶은 대로 가던 이가 환지본처(還至本處) 길 쯤이야 헤맬리 없겠지만, 그래도 다비장에서 그를 배웅하면서 아미타불을 간절하게 불러본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靈山之舞 영산의 춤 대승大乘은 일심一心이오 일심은 중생심衆生心이라 중생심 가운데 피어오른 연꽃의 향기는 무명無明의 향기를 화엄에 자욱 퍼트리니 명明이 진盡함도 없도다 말 끝나면 웃음 말 끝나면 ..

잡감/불교 2026.08.26

격분 대신 무관심

바야흐로 혐오의 언어가 난무하는 시절이다. 의리는 땅에 떨어졌고, 강호엔 격분 대신 무관심이라는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Le silence est le plus grand des mépris(침묵만이 최고의 경멸이다). 이 문구는 샤를 오귀스탱 생뜨 뵈브의 유고집 메 쁘와종(Mes Poisons)에 있는 유명한 아포리즘 중 하나이다. 어떤 사안이나 상황에 대하여, 분노하거나 맞대응하기보다 조용한 침묵으로 대응하는 것이 품격 있고 단호한 거절임을 보여주는 표현이라 하겠다. 존재를 도저히 인정하기 싫고,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차갑고 강력한 경멸의 단어 무관심! 다만, 이 단어가 지금은 소환할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잡감/지금 2026.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