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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좌 명진 다비(茶毘)

도올이 '진짜 중'이라고 일컬었던 명진(明盡)이 입적(入寂)하였다. 인연이 다한 육신을 벗고 본래 나온 자리로 돌아가는 도반(道伴)의 영결식에서 도올은 '영산의 춤'이라는 추도시를 발표하였다. 도올은 추도시에서 '그렇게 늠름한 코끼리처럼 가고 싶은 대로 숲을 노닐더니만 어쩌자구 나보다 먼저 가신단 말이오'라며 애도하고 있다. 늠름한 코리리처럼 가고 싶은 대로 가던 이가 환지본처(還至本處) 길 쯤이야 헤맬리 없겠지만, 그래도 다비장에서 그를 배웅하면서 아미타불을 간절하게 불러본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靈山之舞 영산의 춤 대승大乘은 일심一心이오 일심은 중생심衆生心이라 중생심 가운데 피어오른 연꽃의 향기는 무명無明의 향기를 화엄에 자욱 퍼트리니 명明이 진盡함도 없도다 말 끝나면 웃음 말 끝나면 ..

잡감/불교 2026.08.26

격분 대신 무관심

바야흐로 혐오의 언어가 난무하는 시절이다. 의리는 땅에 떨어졌고, 강호엔 격분 대신 무관심이라는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Le silence est le plus grand des mépris(침묵만이 최고의 경멸이다). 이 문구는 샤를 오귀스탱 생뜨 뵈브의 유고집 메 쁘와종(Mes Poisons)에 있는 유명한 아포리즘 중 하나이다. 어떤 사안이나 상황에 대하여, 분노하거나 맞대응하기보다 조용한 침묵으로 대응하는 것이 품격 있고 단호한 거절임을 보여주는 표현이라 하겠다. 존재를 도저히 인정하기 싫고,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차갑고 강력한 경멸의 단어 무관심! 다만, 이 단어가 지금은 소환할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잡감/지금 2026.08.17

구례 사성암 마애여래입상

사성암(四聖庵)의 주불전(主佛殿)은 약사전(藥師殿)이다. 유리광전(琉璃光殿) 현판을 달고 있는 이 건물이 주불전이라고 건물 곁에 있는 안내문에 쓰여 있다. 건물은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에 기둥을 받쳐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형태로 지어졌는데, 현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건물의 주인은 약사여래불이다. 특이한 것은 이 법당의 본존불이 자연 암벽에 음각된 마애약사여래불이라는 것이다. 암벽 표면에 선만 얇게 그어서 새긴 음각 선각(線刻) 기법으로 조성된 것이다. 법당 안을 들여다 보니 맞은편 벽이 마애여래상이 새겨진 바위 절벽으로 되어 있다. 예불은 그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상을 바라보며 올리는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에 따르면 이 마애여래입상은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조각의 도구가..

절에 가다 2026.08.12

금산사 대장전(大藏殿)

금산사 미륵전 맞은편에 대장전(大藏殿) 현판을 걸고 있는 건물이 있다. 이름만으로 보면 불경(佛經)을 보관하고 있거나,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 즉, 대장경(大藏經)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 같은데, 기실 건물의 주인은 석가모니 부처이다. 안내문에 따르면 애초에는 금산사에서 간행된 경판과 경전 등을 보관하기 위해 목탑 양식으로 만든 전각인데,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지고 인조 때 새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진표율사(眞表律師)는 미륵전을 짓고 그 앞에 목탑을 세운 까닭이 무엇일까? 부안 변산의 의상봉 절벽에 있는 이른바 부사의방장(不思議房丈)이라는 수행처에서의 망신참(亡身懺)은 진표율사를 상징하는 참회 수행이다. 그는 망신참(亡身懺)을 통해 미륵보살로부터 2권의 점찰경(占察經)과 189개의 간자(簡子)라는..

절에 가다 2026.08.11

계룡산 갑사 석조 약사여래 입상

약사여래(藥師如來)는 산스크리트어 바이샤자구루(Bhaiṣajyaguru)의 한역이다. 바이샤자(Bhaiṣajya)는 의사 혹은 의술, 약(藥), 치유의 뜻을 가지고 있고, 구루(Guru)는 스승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약사여래(藥師如來)는 우리말로 하자면 '의사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좀 더 고상한 말로 표현하자면 '치유의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아무래도 종교적 권위를 더하고 보면 '의사 선생님'보다는 '치유의 스승'이 좀 더 있어 보이는 표현같다. 약사여래 신앙은 아마도 고타마 싯다르타를 '마음의 병을 고치는 의왕(醫王)'으로 바라 보던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전통이 대승불교 시대에 이르러 중생의 육체적 고통과 가난, 질병을 직접 치유해 주는 보살로 구체화된 것은 아닐까? ..

절에 가다 2026.08.06

순창 강천사 삼인대

1515년 3월 2일 중종의 두번째 부인 장경왕후가 원자(후일의 인종)를 출산한지 6일 만에 세상을 떠난다. 불과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였다. 국상(國喪)이 발생하고 새로 계비를 들여야 하는 상황이 되자 왕은 구언(求言) 교서를 내린다. 나라에 큰 위기가 닥치거나, 재해가 발생했을 때 혹은, 중대한 정사(政事)를 결정해야 할 때 왕이 교서를 내려서 여려 폭넓은 의견을 구하는 것을 구언(求言)이라고 한다. 절대권력자인 국왕이라 할지라도 재앙이나 위기가 발생하면 제도적 언론기구 뿐만 아니라 관료와 지방 유생, 심지어 백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을 구하였던 것이다. 구언 교서에 따라 올라온 상소를 응지상소(應旨上疏))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왕이 구언(求言) 교서를 내렸을 때, 이에 응하여 올리는 상소라는..

절에 가다 2026.08.06

영산암(靈山庵)

절집에 단청을 하는 이유는 습기와 해충에 약한 목재를 보호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상징적인 색과 문양을 통해서 불교적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세간에서는 단정한 외모를 갖추는 것을 상대방에 대한 존중으로 여긴다. 화장을 겉치레라기보다 사회적 예의와 배려의 표현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찌 봐야 하는가? 여기 글자색이 아주 바래서 아주 가까이 가야 겨우 읽을 수 있는 현판과 거무스름한 기둥에 별다른 보수를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둔 암자가 있다. 그 건물이 다른 건물도 아니고 내부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아난, 가섭 등 나한들과 범천, 제석천 등이 봉안되어 있는 암자의 중심 건물인데도 말이다. 하물며 이 곳은 대중들에게 매우 많이 알려진 곳이기도 하고, 이 암자의 정원..

절에 가다 2026.05.31

화엄매

들매, 흑매 꽃이 피었다. 겨울이 다 갔는가? 세간의 형편을 깊이 있게 알리 없는 눈 먼 나귀의 소견으로 주위의 큰 추위는 일단 지나간 것 같은데, 멀리 떨어진 곳은 여전히 한겨울인 듯하다. 어느 곳이든 완연한 봄이 오기를 기대하며, 한바탕 모진 추위를 겪지 않는다면 어찌 이토록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을꼬! 라고 읊었던 황벽 희운(黃檗 希運)의 송(頌)을 소환해 본다. 塵勞迥脫事非常 (진로형탈사비상) 緊把繩頭做一場 (긴파승두주일장) 不是一翻寒徹骨 (불시일번한철골) 爭得梅花撲鼻香 (쟁득매화박비향) 심란한 세상사 벗어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고삐 단단히 쥐고 한 판 붙어 봐야지. 한바탕 모진 추위를 겪지 않는다면, 어찌 이토록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을꼬! 꽃을 보고 내려오는 길..

절에 가다 2026.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