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미륵전 맞은편에 대장전(大藏殿) 현판을 걸고 있는 건물이 있다. 이름만으로 보면 불경(佛經)을 보관하고 있거나,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 즉, 대장경(大藏經)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 같은데, 기실 건물의 주인은 석가모니 부처이다. 안내문에 따르면 애초에는 금산사에서 간행된 경판과 경전 등을 보관하기 위해 목탑 양식으로 만든 전각인데,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지고 인조 때 새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진표율사(眞表律師)는 미륵전을 짓고 그 앞에 목탑을 세운 까닭이 무엇일까? 부안 변산의 의상봉 절벽에 있는 이른바 부사의방장(不思議房丈)이라는 수행처에서의 망신참(亡身懺)은 진표율사를 상징하는 참회 수행이다. 그는 망신참(亡身懺)을 통해 미륵보살로부터 2권의 점찰경(占察經)과 189개의 간자(簡子)라는 핵심 성물을 얻음으로써 도량 중창과 대중 구제의 권한을 인가받게 된다. 현신한 미륵보살이 인증한 이 소중한 증표를 진표율사는 자신이 세운 미륵전 앞에 목탑을 세워 보관하고 싶지 않았을까? 아니면, 훗날 도솔천에 머물던 미륵보살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용화수 아래에서 설법을 할 때,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용화삼회(龍華三會)의 법문(經)이 미륵전 앞 목탑에 모셔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은 아닐까?
어쨋든 탑 모양은 사라지고, 탑의 흉내를 낸 복발(覆鉢)과 보주(寶珠)를 지붕에 이고 있는 건물 안에는 경판이나 경전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석가모니 부처가 탱화 대신 화려한 광배를 배경으로 두고 앉아 있고, 양 옆에는 그의 두 제자 가섭과 아난이 정중하게 시립하고 있다. 하긴 경판이나 경전이 석가모니 부처의 설법에 근거한 것이니, 석가모니도 있고 그의 제자 중에서 다문제일(多聞第一)로 알려진 아난도 곁에 있는데 전각 안에 경판이나 경전이 없다 한 들 무슨 대수겠는가! 시립한 아난존자는 언제라도 이와같이 나는 들었노라고 스승의 설법을 외워줄 것만 같다.
뙈약볕이 많이 누그러진 시간에 곳곳에 피어나는 진분홍 배롱나무 사이를 지나 미륵전 앞 절마당에 이르렀다. 금산사가 워낙 큰 절이기도 하거니와 방학 때라 그런지 평일 저녁시간인데도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다.
미륵전이 바라보이는 맞은편 대장전에 눈 먼 나귀 하나가 들어선다. 참배객들로 북적이는 미륵전에 비해 대장전은 고요하다. 대장전에 들어선 그가 고요한 법당 마루에 앉아 점찰목을 던진다. 아! 법당의 적막을 깨고 굴러가는 저 목륜(木輪)은 눈 먼 나귀가 지은 악업의 때가 과연 얼마나 남았다고 알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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