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감/고향 5

여름날 #3

뗄싹 큰 놈들 대여섯이 꾀를 할딱 벗고 내깔 옆 신작로를 따라 뛰댕기고 있다. 아름드리 곤밤나무가 늘어선 신작로에 요란한 고함소리와 흙먼지가 날린다. 강아지 새끼마냥 싸대는 아그들이 노상 모이는 곳은 마을 가운데 있는 회관 앞 크나큰 버드나무가 있는 곳이다. 망살이 비석치기 좆박기에 숨바꼭질까지 동네 아그들이 노는 주요 무대이기 때문이다. 뙤약볕 징허게 뜨건 날 뒷동네 저수지에서 내려온 물이 내깔을 가득 채우고서 흘러가면 꾀복쟁이들은 너나없이 버드나무 아래쪽에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든다. 물 위로 휘휘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그네 타듯 다이빙하는 녀석도 있고 얼마간 떨어져 있는 다리똥 위에서 재주 넘으며 몸을 날리는 놈도 있다. 노는데 정신이 팔린 사이 해는 저물고 기뚝에 지녁밥 짓는 냉갈이 피어 오..

잡감/고향 2023.06.29

월동준비 #2

찬바람이 빨랫줄에 널린 광목 홑청을 훓고 지나갑니다. 우풍을 막아줄 솜이불을 지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엄마는 풀을 멕이고 물을 뿜어서 차곡차곡 갠 홑청을 밟고 다듬이질하여 빳빳하게 한 다음 이불솜에 대고 바느질합니다. 더불어 비갯이도 새로 합니다. 나는 새 이불 위에 새 비게를 비고 누워봅니다. 꼬실꼬실한 감촉이 봄날 양지쪽에서 해바라기하는 느낌입니다. 엄마가 이불 바느질을 하면 누이는 젙에 앉아서 뒤꿈치 구녁난 나이롱 양말을 꼬매고, 물팍이 헤진 내복도 천조각을 덧대어 야무지게 꼬매 놓습니다. 작은방 호롱에 불이 켜지면 방 구석테기 쑤싯대 안에서 막내가 고구마를 꺼냅니다. 엄마한테 들켜도 덜 얻어들을 막내가 먼저 총대를 맵니다. 고구마 껍질을 이빨로 드득 드득 갉아 내고 돌려가며 누우런 속살을 한 ..

잡감/고향 2023.01.04

월동준비 #1

갈쿠나무는 긁어다 뫼똥 가생이 펑퍼짐한 잔디밭에 모타 둡니다.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소낭구 아래는 옴딱지 앉은 등짝을 긁어싼 모냥으로 삘건합니다. 갈쿠나무가 많지 않으면 아쉬운대로 야막나구 잎사구까지 긁어 모틉니다. 한 동 지고 갈 만치 나무가 모태지면 바닥에 새내끼 서너줄을 깔고 솔가지나 야막나무 가지를 그 위에 펴 놓습니다. 그리고 모태논 나무를 갈쿠질하여 절편 모냥으로 잘 다진 다음 한 단 한 단 쌓아 올립니다. 마지막 단까지 쌓아 올리면 맨 위에도 솔가지나 야막나무 가지를 얹습니다. 그리고 새내끼로 깡깡 묶은 다음 옆구리가 터지지 않도록 갈쿠로 잘 다져서 마무리 합니다. 방고래 짚히 불을 때야 할 시절입니다. 아랫목 담요에 묻어 둔 옴박지 속에는 삶은 고구마가 멫 개나 남아 있을랑가 모르겠습니다.

잡감/고향 2022.12.01

여름날 #2

해질녘 작두샘에서 흘러 내린 쌀뜨물이 고랑을 따라 마당을 질러 갑니다. 행여 보리쌀 한 톨이라도 줏어 먹을 수 있을까 암닭은 병아리들을 이끌고 고랑으로 모여 듭니다. 오리 몇 마리도 고랑에 주둥이를 휘적입니다. 질세라 때까우 두 마리가 귀청 떨어지게 울어제끼며 합류합니다. 알뜰한 키질 조리질에 별 소득이 없을 듯 하지만 요놈들은 부지런히 부리를 쪼고 주둥이를 놀려댑니다. 시암 젙에 돼지막에는 꺼먹돼지 한마리가 백오십근을 바라보며 자라고 있습니다. 낮에 논고랑에서 잡아온 개구리를 꿰미 채 삶아 돼지 여물통에 던져 줍니다. 구정물만 받아 먹던 놈이 고기 냄새를 맡더니 꾸엑 꾸엑 거리며 아주 살 판 났습니다. 배고픈 누렁이는 토방 한켠에서 비어 있는 지 밥그릇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쭈그리고 앉아 있는..

잡감/고향 2022.11.30

여름날 #1

흥림골 따라 늘밭 넘어가는 고개길 젙에 저수지가 하나 있습니다. 그닥 높지 않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가둬놔서 그런지 크기가 째깐합니다. 그래도 돌로 쌓은 제방이며 배수로까지 있어서 저수지 꼴은 하고 있습니다. 날은 덥고 고샅에 별 소리가 안들리면 동네 애들은 어김없이 이 곳에 와 있습니다. 마을에서 이 곳까지 걸어오면 풀때죽 한그릇으로 채운 배가 푹 꺼질 만한 거리지만 그래도 여름에는 이만한 놀이터가 없습니다. 뙈얕볕에 깔 비러 온 몇 놈이 홀딱 꾀를 벗더니 물 속으로 뛰어 듭니다. 한참동안 서로를 물속에 꼬라박으며 놀고 있습니다. 송장시엄으로 저수지 가생이를 돌고 있는 놈도 있습니다. 둑방에는 소들이 청보리 된장국 먹는 소리를 내며 풀을 뜯습니다.

잡감/고향 2022.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