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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작두샘에서 흘러 내린 쌀뜨물이 고랑을 따라 마당을 질러 갑니다. 행여 보리쌀 한 톨이라도 줏어 먹을 수 있을까 암닭은 병아리들을 이끌고 고랑으로 모여 듭니다. 오리 몇 마리도 고랑에 주둥이를 휘적입니다. 질세라 때까우 두 마리가 귀청 떨어지게 울어제끼며 합류합니다. 알뜰한 키질 조리질에 별 소득이 없을 듯 하지만 요놈들은 부지런히 부리를 쪼고 주둥이를 놀려댑니다.
시암 젙에 돼지막에는 꺼먹돼지 한마리가 백오십근을 바라보며 자라고 있습니다. 낮에 논고랑에서 잡아온 개구리를 꿰미 채 삶아 돼지 여물통에 던져 줍니다. 구정물만 받아 먹던 놈이 고기 냄새를 맡더니 꾸엑 꾸엑 거리며 아주 살 판 났습니다.
배고픈 누렁이는 토방 한켠에서 비어 있는 지 밥그릇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나 간혹 발바닥을 핱고 있는 모습이나 다같이 애잔합니다. 말복이 오기 전에 사단이 날 것을 아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 식구들은 마당 평상에서 모기와 함께 저녁을 먹습니다. 평상 옆에 모깃불을 피운다 주위에 호마끼를 핑긴다 하여도 모기는 여전히 앵앵거립니다.
어느새 마당 앞 감나무 꼭대기에 걸린 어둠이 바자울 위로 내려 앉습니다. 그렇게 밤이 찾아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