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가다

태화산 광덕사 변소깐

samongeereem 2026. 10. 1. 23:02

 2019년 7월 발행된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라는 책에서 김용옥은 철학을 배우던 대학 3학년 때 불교를 제대로 이해해 보겠다며 고향에 있는 광덕사로 출가한 적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도올은 몇 달간의 광덕사 생활에서 겪었던 독특한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변소깐에서 처음 접한 반야심경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처음으로 반야심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습개도 '변을 보다가 밑씻개 용으로 변소깐에 어지럽게 널려 있던 종이 쪼가리에 적혀진 글자의 의미를 추측하고 추론하면서' 라고 한다. 도올은 충격에 빠진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반불교다! 이것은 불교가 아니다! 이것은 불교의 모든 논리를 근본에서부터 파괴하는 전혀 새로운 논리다! 불교를 불교다웁게 만드는 모든 그룬트 Grund(땅바닥, 근거, 기초)를 파멸시키는 다이나마이트다! 아니! 불교라는 종교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종교냐? 종교가 반종교의 논리를 자기의 최상의 언설로서 모시고 있다니!

 도올은 이 때의 느낌이 50년간 자신을 지배한 학문적 탐구보다 원초적이고 강렬한 것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긴 그러한 충격이 오히려 훗날 그의 학문적 탐구에 엄청난 동력으로 작용했을 터, 당연히 불교와 관련된 학문적 성취에도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반세기도 넘게 시간이 흐른 오늘의 광덕사는 책에 묘사된 도올이 출가했을 무렵의 폐찰에 가까울 정도로 쇠락한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물론 변소깐도 책에 묘사된 나무로 엉성하게 만든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밑씻개용 심경 쪽지를 변소깐 앞에 붙여놓고 거의 3개월간 연구에 골몰하였던 그 행위를 도올은 '변소깐 용맹정진'이라 이름하고 있다. '변소깐 용맹정진'이라니! 그 네이밍 실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편으로 도올은 스스로 '나는 좆도 아니다'라고 송하고 있지만, 그래도 세간에 그의 이름값이 헐하지 않기에 사찰에서 '변소깐 용맹정진'이라는 이벤트를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하고 있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눈 먼 나귀의 분별이 너무 나갔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경당 앞 해우소 똥 누는 곳에 들어가 본다.  역시 눈 먼 나귀의 분별이 지나쳤나 보다. 똥간 문짝 안쪽에는 경구 한 자 보이지 않고, 문짝 바깥에 붙어 있는 스님전용이라는 안내문만 눈에 들어 온다.

연화당 앞 화장실
고경당 앞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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