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1987 추억 들국화'라는 음반이 있습니다. 1987년 여름 무렵에 발매된 이 음반은 전인권과 허성욱이 중심이 되고, 들국화 멤버들이 세션으로 참여하여 만든 음반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음반 시장은 LP와 카세트 테이프가 주력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LP음반의 자켓은 단순한 포장재 이상의 다양한 의미와 역할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 자켓의 전인권 모습을 너무 좋아합니다. 앨범 자켓을 보면 지금의 전인권과는 너무 다른 모습인데요, 청바지에 하얀 셔츠를 입은 홀쭉이 전인권이 해맑게 웃고 있습니다. 곁에 있는 젊은이는 들국화 원년멤버인 키보디스트 허성욱입니다. 허성욱은 이 앨범을 발매하고 나서 10년 후인 30대 중반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앨범에는 8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나같이 주옥같은 이 곡들은 허성욱이 연주한 피아노 선율의 쓸쓸함과 전인권의 특유의 아련한 여운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 앨범의 B면에 '어떤...(가을)' 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전인권이 직접 가사를 쓰고 작곡한 곡입니다. 곡의 제목을 보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련함과 쓸쓸함이 시각적으로 묻어나는데, 가사를 읽어 보면 그 쓸쓸함이 시적으로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들국화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대둔산 낙조대 턱 밑에 보랏빛 쑥부쟁이가 피었네요. 쑥부쟁이를 목도리처럼 두르고 있는 낙조대를 앞에 서니 등로의 피로가 순식간에 들국화 노래로 치환되는 마법이 발생합니다. 머리숱이 거의 없는 이가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 있던 공포의 시기에 젊은이들의 열망을 날 것 그대로 쏟아내던 전인권의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낙조대에 오르니 정상에는 머리털 대신 억새가 자라고 있네요.
낙엽이 떨어지고
설레이고 우 답답하고
다른 방법은 없고
또 가을 또 가을
바람은 불어대고
어디론가 가고 싶고 생각하고
다른 방법은 없고
또 가을 또 가을
진한 녹차나 마셔볼까
전화를 걸어볼까
어디론가 훌쩍 떠나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