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9.15일 시사IN에 실린 '2009 거꾸로 희망이다-강좌' 연재 기사에는 9.7일 이 강좌의 첫 강사로 나선 이해찬의 강연 내용이 실려있다. 돌이켜보면 그 강좌가 열린 2009년은 민주진영에 불운이 겹겹으로 불어닥친 그런 시절이었다. 정권은 이미 MB에게로 넘어갔고, 그 해 여름 종합편성채널(종편)의 근거가 된 미디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으며, 5월과 8월에는 민주개혁 세력의 두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시기였다. 참으로 암울한 그 때 그의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까? 그래도 젊은 날에 겪었던 그보다 훨씬 더 힘든 삶의 내공을 담아 이해찬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나간다.
해당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슴에 담고 있는 구절이 들어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1시간30분에 걸친 강의 후 청중의 질의가 빗발쳤다. 이 전 총리의 강연 중 가장 인상적인 메시지는 질의·응답 시간에 나왔다. 한 청중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가슴 떨린 순간이 언제였는가”라고 묻자, 이 총리는 1997년 정권 교체 당시를 거론하며 “포기하면 안 된다. 끈질긴 사람이 이긴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어려울 때는 쉬면 된다. 포기는 하지 말고. 포기하면 좌절하고, 좌절하면 변절한다. 일제에서 독립운동할 때 가장 변절을 많이 한 시기가 1939년에서 1943년까지다. 그즈음 ‘우리가 도저히 독립 못하겠구나’ 하고 많이 변절했다. 그게 다 포기하고 좌절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얘기하겠다. 포기하면 좌절하고, 좌절하면 변절한다.”
그가 이국 땅에서 명을 달리 하였다. 대둔산에 오르려 수락계곡 주차장에 도착하였을 때 그의 유해가 공항에 도착했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유튜브 생방송을 통해 흘러 나오는 진행자의 유해 봉환 소식에도 안타까움이 진하게 배어있다. 이심전심일까? 짠한 마음이 이어폰을 통해 가슴까지 전해진다. 방송에 출연한 여러 사람들도 다 그런 것 같다. 그래서일까, 출연자들은 그와 얽힌 각자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그리움과 슬픔을 토로하고 있다.
오래 전 큰 애와 함께 그의 강연장에 갔던 적이 있다. 노란 풍선이 아치 모양으로 장식된 강연장에서 개혁을 강조하던 그의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더 오래 전에 있었던 5공 청문회도 기억난다. 노무현과 이해찬을 스타로 만든 청문회 중계를 보면서 보수적인 집안 어른들과 격하게 논쟁을 벌였던 기억도 난다. 과문한 백성이 두 인물의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가당치 않을 터, 다만 소박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두 인물에 대한 존경이 나의 동기이기도 하거니와, 기회가 된다면 아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등로에 나서면 산은 늘 그 자리에 그러하다. 그러하다는 것은 경외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산이 오늘은 유독 낯설게 느껴진다. 늘 그 자리에 그러한 산이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계곡을 지나는 데크길은 간밤에 내린 눈서리가 아침 햇살을 받아 수줍은 듯 몸을 사리고 있고, 마른 계곡에는 물 듣는 소리가 그쳤다. 더불어 새들마저 조용하다. 적막을 깨는 것은 오로지 등로의 서릿발을 밟는 서걱 서걱 발자국 소리 뿐!
선녀폭포와 수락폭포를 지나고, 능선길에 올라 마천대로 향한다. 식상하게 들리겠지만 산을 오르는 것은 인생 행로와 비슷하다. 힘들다는 얘기다. 살다보면 누군들 좋은 시절이 없겠냐마는, 대체로 우리 삶이 고난과 시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물며 일반 백성들이야 더 말할 나위 없지 않겠는가! 어쨋든 오늘은 산길이 먹먹하기만 하다. 하여 그 먹먹함을 땀방울로 흘려 버리려고 그 만큼 그의 이야기를 주워담으며 산길을 걷는다.
무엇인가? 그렇다. '2009 거꾸로 희망이다' 강연에서 그가 한 이 말이다.
'어려울 때는 쉬면 된다.'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자.' '끈질긴 사람이 이긴다.'
'어려울 때는 쉬면 된다.'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자.' '끈질긴 사람이 이긴다.'
'어려울 때는 쉬면 된다.'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자.' '끈질긴 사람이 이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