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니기 좋은 날입니다. 마침 오늘이 구담(瞿曇) 선생 생일이라 떡 쪼가리라도 얻어 먹을 수 있을까 하고 신안사(身安寺)에 들렀습니다.
오랜만에 찾아 온 절집은 예전에 비해 크게 다를게 없습니다. 다만 생일잔치에 부조하러 온 사람들로 법당 안밖이 분주하고, 절마당에 늘어 선 천막에는 비빔밥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수다에 시끌벅적합니다.
군수라는 이가 권속들을 여럿 거느리고서 지나가고, 민중의 지팡이를 자처하는 조직의 우두머리는 노인들에게 지팡이를 선물합니다.
극락전 앞마당은 오색등을 주런이 매달아서 자못 잔치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그나마 사람들 발길이 덜한 가람 가장 윗쪽의 대광전(大光殿)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맑은 햇살과 함께 비로자나불이 내려다 보고 있는 대광전 앞 마당에 서서 건물 기둥에 걸린 주련을 바라봅니다.
古佛未生前
凝然一相圓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
本來非皁白
無短亦無長
멍하니 서 있는 한 물건을 살펴보는지 바람이 곁눈질하며 돌계단 옆을 지나갑니다
주련의 이 문구는 여러 사찰에서 볼 수 있고 문구가 기록된 서적도 여럿입니다만 굳이 출처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에 간략하게 정리합니다.
1579년 간행된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선가귀감 (禪家龜鑑)은 이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有一物於此 從本以來 昭昭靈靈 不曾生 不曾滅 名不得 狀不得
一物者 何物 古人頌云
古佛未生前 凝然一相圓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 名不得 狀不得也 六祖告衆云 吾有一物 無名無字 諸人還識否 神會禪師即出曰 諸佛之本源神會之佛性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 懷讓禪師 自嵩山來 六祖問曰 什麽物伊麽來 師罔措 至八年 方自肯曰 說似一物 即不中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 三敎聖人 從此句出 誰是擧者 惜取眉毛
1417년 간행된 함허당 득통화상(涵虛堂 得通和尙)의 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家解說誼) 서두에 실려 있는 야부도천 선사의 금강경(金剛經) 경명(經名)에 대한 송(頌)입니다.
摩訶大法王 無短亦無長 本來非皁白 隨處現靑黃 花發看朝艶 林凋逐晩霜 疾雷何太擊 迅電亦非光 凡聖元難測 龍天豈度量 古今人不識 權立號金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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