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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 낙엽

맨살이 드러난 등로를 지나갑니다. 솔잎이 길 따라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다람쥐 한 마리가 길을 질러갑니다. 입동 지난지 꽤 됐는데 여전히 바쁩니다. 길가 솔잎 하나를 주워 공연히 잎깍지를 비틀어 봅니다. 솔잎은 두 개의 날카로운 바늘로 분리됩니다. 그 뾰족한 잎사귀를 허공에 날려 봅니다. 솔잎이 날아간 자리에 대체나 솔가리가 지천입니다. 금새 갈쿠나무 한 짐 만들 수 있을 듯 합니다. 절절 끓는 아랫목이 떠오릅니다. 잔불에 김을 굽고 고구마도 묻어야겠습니다. 아! 갑자기 시간이 거꾸로 흘러 갑니다. 이럴 땐 꼭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래도 뭐 어렵던 그 시절이 그립고 행복하고 그렇습니다.

산에 오르다 2023.11.19

엄마 #4

미수(米壽)는 여든여덟 나이를 일컫는 말입니다. 수명(壽命)이 쌀이라니 끼니때마다 쌀밥을 먹어도 될 만큼 대우를 받을 나이가 되었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머리카락이 모두 흰 쌀밥처럼 하얗게 센 나이라는 뜻일까요? 계룡산 연천봉 정상에 오르면 바위에 새겨진 여러 글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곳에 방백마각(方百馬角) 구혹화생(口或禾生)이라는 글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석각 앞에는 그 글귀의 내용을 해설하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안내문의 해설에 따르면 방백(方百)은 4백을 의미하고 마(馬)는 80을, 각(角)은 2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방백은 사방이 백이라 사백이라고 해석하면 이해가 되고, 각은 짐승의 뿔이 2개 이므로 2라는 해설이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마(馬)는 오(午)에..

잡감/가족 2023.11.17

가난한 사람이 부자와 재물이 같게 하려고 한 비유

백유경(Śatāvadāna-sutra, 百喩經)은 5세기 인도 승려 상가세나(Saṅghasena 僧伽斯那)가 교훈적인 짤막한 우화들을 모아 편찬한 작품입니다. 그 중 아흔한번째 이야기는 가난한 자가 자신과 부자의 재물을 비교하며 자신의 궁색한 처지를 한탄하다가 결국 전 재산을 내다 버린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불교 경전에 괴로움(固)이라고 번역된 둑카(Dukkha)는 사전적으로 unpleasant, painful, causing misery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불쾌하고, 고통스럽고, 불행의 원인이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제 생각에는 이 세 단어의 뜻을 뭉뚱그려서 불만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듯 합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둑카 즉 불만족은 일상에서 노상 일어나는 일입니다. 만사 불여의(不如意)와 ..

잡감/불교 2023.11.12

유틸리티 플레이어

유틸리티 플레이어(utility player)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있다. 해태 타이거즈 이건열이다. 동국대 시절 이건열은 포수였다. 하지만 프로야구에 발을 담근 이후로는 포수 뿐만 아니라 유격수를 제외한 내야수 그리고 외야에서 좌익수 우익수 등을 맡으면서 선수생활 내내 글러브를 바꿔 끼었다. 요즘에야 이건열을 'KBO 역사상 최초의 유틸리티 플레이어'라는 있어 보이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지만 당시 그는 무려 여섯 개의 포지션을 떠도는 사실상 팀 내부의 저니맨이었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장채근이나 김성한이 없었다면 이건열은 어떤 선수가 되었을까? 거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그의 재능은 어떤 식으로 펼쳐졌을까? 장성호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의 서른 중반은 화려하게 꽃 피었을까? 아니면 좀 덜 쓸쓸..

잡감/사람 2023.11.09

우번(虞翻)

삼국명신서찬(三國名臣序贊)은 동진(東晉)의 원굉( 袁宏, 字彦伯)이 지은 삼국시대 명신(名臣)에 대한 행장기(行狀記)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순욱(荀彧, 字文若), 제갈량(諸葛亮, 字孔明), 주유(周瑜, 字公瑾), 순유(荀攸, 字公達), 방통(龐統, 字士元), 장소(張昭, 字子布), 원환(袁渙, 字曜卿), 장완(蔣琓, 字公琰), 노숙(魯肅, 字子敬), 최염(崔琰, 字季珪), 황권(黃權, 字公衡), 제갈근(諸葛瑾, 字子瑜), 서막(徐邈, 字景山), 육손(陸遜, 字伯言), 진군(陳群, 字長文), 고옹(顧雍, 字元歎), 하후현(夏侯玄, 字泰初), 우번(虞翻, 字仲翔), 왕경(王經, 字承宗), 진태(陳泰, 字玄伯) 등 스무명입니다. 이들 중 순욱 순유 원환 최염 서막 진군 하후현 왕경 진태 등 아홉은 위..

잡감/사람 2023.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