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올 봄에 집 마당에다 양봉을 해봤는데 벌꿀이 제법 채취 되었습니다. 벌꿀 팔아서 번 돈으로 라디오를 한 대 사서 보냅니다.'
70년대 초 넷째 아들네와 같이 살고 있는 어머니에게 둘째 아들이 선물로 라디오를 보내왔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함께 동봉한 편지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넷째 아들은 나의 아버지다. 물론 둘째 아들은 나의 큰아버지다. 큰아버지는 아이들 가르치는 것을 평생 업으로 하셨지만 농사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양다래 양자두 등 과수도 가꾸고, 텃밭도 일구셨다. 게다가 그 해에는 처음으로 양봉을 해보셨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보다 수확이 좋았나 보다. 그래서 그 기쁨을 제일 먼저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으셨던 것은 아닐까?
그런 연유로 생긴 라디오를 통해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할머니와 엄마는 아버지 퇴근보다 왕비열전 시간을 더 기다리게 되었고, 우리 꼬맹이들은 달려라 마루치 날아라 아라치를 할머니 이야기 보따리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다.
지난 주말에 엄마에게 들렸다. 며칠 전에 짠 들기름 두 병을 내밀었더니
"아따, 이것이 무시다냐?" 라고 하신다.
"엄마! 올 해 내가 들깨 농사를 지었어. 이 것이 내가 처음 농사지은 들깨로 짠 기름이여!"
엄마 눈이 커지며
"니가 회사 댕기는 사람인디 뭔 농사를 지었다고 그려?"
"글고 니가 밭이 어디 있간디 농삿일을 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올 여름에 들깨 심는다고 했던 얘기와 얼마 전에 들깨 다 베고 이제 털기만 하면 된다고 했던 얘기는 어느새 까맣게 잊으셨나 보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동안 말이 없더니
"아이고 우리 며늘아가 고상이 많았겄다."라고 하신다.
하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