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공이 처음 덕숭산에 입산했을 때 기거한 곳이 금선대(金仙臺)라는데!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주무셨겠지?
달이 뜨면 갱진교(更進橋)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을지도 몰라!
속세와 인연을 다했던 전월사(轉月舍)에서 진성(圓潭眞性)은 무엇을 보았을까?
금선동을 오르는 한 물건의 어설픈 헤아림이 소림초당 창문에 그림자로 어른거리면
스승처럼 그도 일없이 낮잠에 취해 있었을까?
새들은 알겠지?
그럴거야!
수덕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산중턱의 정혜사 쪽을 올려다 보면 성루처럼 자리한 향운각과 그 옆에 석조입상의 관세음보살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려다보면 까마득하지만 계단길이 잘 되어 있어 올라갈만 하다. 정혜사(定慧寺)까지 1080계단은 울력과 불사에 평생을 바친 벽초경선(碧超鏡禪)의 작품이라고 한다.
정혜사(定慧寺) 금선대(金仙臺) 갱진교(更進橋) 만공탑(滿空塔) 전월사(轉月舍) 등 덕숭산 금성동 일대에 만공월면(滿空月面)의 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 많지만 그 중의 으뜸은 '석조관음보살입상'이다.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금선동(金仙洞) 계단을 올라 향운각(香雲閣)에 이르면 10m에 육박하는 육중한 석주형(石柱形) 거불(巨佛)이 자리하고 있다. 정혜사 석조관음보살입상이다. 환조상(丸彫像)으로 보이지만 완전한 환조도 마애불도 아닌 구조이다. 실제로 보살상의 뒷쪽을 살펴보면 천연암반과 보살상의 일부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보살상이 마치 바위에서 솟아난 것처럼 보인다. 만공월면 대선사 행장(滿空月面 大禪師 行狀)에는 덕숭산 중턱에 거대한 자연석을 서 있는 채로 조각하여 용출관음석불입상(湧出觀音石佛立像)을 조성하였으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수덕사 입구에 새로 지은 성보박물관인 근역성보관(槿域聖寶館)에서도 만공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박물관 네이밍에서 보듯 해방을 맞아 만공이 무궁화꽃에 먹물을 묻혀 쓴(槿花筆)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정신이 현판에 담겨진 것으로 보인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공의 초상을 만나게 된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에게서 받은 거문고도 전시되어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그가 이룬 수덕사 대웅전 해체 복원 관련 자료들도 전시되어 있다.
만공은 인적 토대가 되는 선지식(道師)과 도반(道班), 그리고 수행공간(道場)이라는 물적토대가 안정되어야 수행자들이 제대로 정진할 수 있다고 여겼다. 오늘 '절 짓는 스님'이 덕숭산에 돌아 온다면 도사와 도반은 차치하고 수없이 많이 세워진 총림(叢林)의 저 물적토대에 감동적인 기도 정진을 떠올릴까 아니면 윤기와 배부름이라는 마군을 떠올릴까?
부질없는 질문은 그만두고 그가 말한 세계일화의 의미를 소환해보자.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다. 머지않아 이 조선(朝鮮)이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중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