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헌(道憲, 824~882)은 희양산에 봉암사를 짓고 구산선문 중 희양산문(曦陽山門)을 개창한 인물입니다. 도헌이 입적하자 헌강왕은 지증(智證)이라는 시호와 적조(寂照)라는 탑명을 내립니다. 최치원은 도헌을 현창(顯彰)하기 위해 비문을 짓습니다. 국보 315호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鳳巖寺 智證大師 寂照塔碑)에 새겨진 비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비문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 西化則靜衆無相常山慧覺禪譜益州金鎭州金者是東歸則前所叙北山義南岳陟... 우리말로 '중국에 귀화한 사람으로는 정중사의 무상과 상산의 혜각이니, 곧 선보에서 익주김 진주김이라 한 사람이며, 고국에 돌아온 사람은 앞에서 말한 북산의 도의와 남악의 홍척'이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주 #1)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네 명입니다. 신라 성덕왕(聖德王)의 셋째 왕자이며 중국의 오백나한 중 455번째 무상공존자(無相空尊者)로 추대된 것으로 알려진 정중사(靜衆寺)의 무상대사(無相大師, 680~756)와 하택신회(荷澤神會) 문하에서 남종선의 법맥을 계승한 것으로 알려진 상산혜각( 常山慧覺)은 신라로 돌아오지 않고 선종의 본고장에서 활동합니다.
신라로 돌아와 설악산에 진전사(陳田寺)를 짓고 은둔한 도의선사, 지리산 실상사(實相寺)를 창건한 홍척선사 이 두 스님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가지산문(迦智山門)과 실상산문(實相山門) 맥을 형성합니다. 지증대사 적조탑비 비문에는 ...北山義與南岳陟垂鵠翅與展鵬翼海外時來道難抑遠流禪河無壅塞...'북산의 도의가 홍곡(鴻鵠)의 날개를 드리우고, 남악의 홍척이 대붕(大鵬)의 날개를 펼쳤네. 해외에서 알맞은 때에 귀국하매 도는 누르기 어려웠으니, 멀리 뻗은 선의 물줄기가 막힘이 없구나.'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2)
일요일 아침 절마당을 지나갑니다. 쌀쌀한 공기를 밀어내는 볕이 따갑습니다. 논 가운데 절인 만큼 곡식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극락전으로 통하는 문에서 스님이 한 분 나오네요. 곱게 승복을 차려입은 중의 모습은 아닙니다. 어디서 봤더라? 목탁(木鐸)에 기거한다는 도법스님인가? 그런거 같네요.
스님이 지나간 길 옆에 몸통(비신, 碑身)은 어디로 갔는지 없고, 거북모양의 받침대(귀부, 龜趺)와 머릿돌(이수, 螭首)만 남아있는 비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수의 명문([銘文)은 응료탑비(凝寥塔碑)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붕이 날개를 펼치듯 선의 물줄기를 멀리 멀리 뻗어 나가게 하였다는 홍척선사의 흔적입니다.
한동안 서동두류남악가(西東頭流南岳家) 증각대사응료탑비(證覺大師凝寥塔碑)앞에서 목탁 건물의 주련(柱聯)에 새겨진 글귀를 되뇌어 봅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주#1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데이터베이스>한국고대금석문>통일신라 > 비문>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朝鮮金石總覽/解釋文)
(주#2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데이터베이스>한국고대금석문>통일신라 > 비문>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南東信/解釋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