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비가 계룡산에 산신각을 재건하고 산신 제사에 정성을 다 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중악단은 전망이 좋고 터가 넓습니다. 궁궐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서 규모는 작지만 화려하고 위엄이 있습니다. 지붕에는 궁궐 건물에서나 볼 수 있는 잡상(雜像)이 올려져 있고, 대문간채와 중문간채의 대문에는 도상(圖像)의 사천왕이 버티고 있습니다. 민비는 이토록 화려한 기도처를 짓고 산신제사에 정성을 다 했지만 을미년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늦은 여름 아침 중악단을 지나갑니다. 등로 담장을 따라 여러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수능기도니 합동차례니 등의 문구가 적혀 있는 현수막이 절간 이름으로 걸려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 중에는 이런 현수막도 있습니다. 민씨 일가의 부정부패를 뒷받침하였고 무속에 빠져 국고를 탕진하였으며 외세를 끌어들여 나라를 망하게 한 민비, 이 여인의 추모/천도대재가 이 곳 중악단에서 열린다는 현수막입니다.
추녀마루 위에 앉아 있는 손행자(孫行者, 손오공)는 진령군(眞靈君)을 보았을까요?
계룡산신은 허약한 세자(순종)를 위한 기도와 제사에 영검으로 답하였을까요?
세월이 흘러 다시 무속의 시간이 돌아왔는데 저기 옆 건물에 계시는 아미타 부처님과 노사나 부처님은 안녕하시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