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9년 汴梁(開封)을 다시 원나라에 뺏긴 홍건적이 요동으로 쫓기게 되고 음력 12월 급기야 압록강을 넘어 고려를 침략합니다.
20일 만에 서경이 함락되지만 고려군은 이듬해 2월에 홍건적을 압록강 밖으로 몰아냅니다.
그리고 1361년 공민왕 10년 10월 원나라의 공세에 밀린 홍건적이 다시 고려를 침략합니다.
두달만에 수도 개경이 함락됩니다.
피난길에 나선 공민왕은 파주 이천을 지나 11월 을해일 충주 도착, 12월 임진일 복주(안동)에 이릅니다.
개경 탈환은 1362년 1월 성공합니다.
이에 공민왕은 2월 신축일 복주를 출발하여 상주 보은을 거쳐 8월 임진일에 청주 도착합니다.
청주 행궁에서 약 5개월을 머문 뒤 죽주 파주를 거쳐 1363년 2월 계미일에 개경으로 돌아옵니다.
홍건적의 2차 칩입으로 피난한 지 1년 3개월만에 개경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천태산 영국사는 공민왕의 피난길 발자취가 서려 있다고 전해옵니다.
왕이 당시 국청사(國淸寺)에 올라 국태민안을 빌었다고 하며 그래서, 뒷날 절 이름을 영국사(寧國寺)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왕이 환도에 영동을 지난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청주 행궁에 머물던 5개월 기간 중 이곳을 방문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