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가다

관촉사 시주비(施主碑)

samongeereem 2025. 12. 13. 23:50

 신중단(神衆壇)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을 모신 단이다. 사찰에서 불법과 도량을 지키는 중요한 신앙적 공간이자 수행자와 불자들에게 강력한 가피와 호법의 영험함을 발휘한다고 믿어진다. 어떤 셀럽 스님은 신중(神衆) 기도가 얼마나 영험한지 '실무자론'을 들어서 설명하기도 한다. 불보살에 대한 상단 예불이 중요하지만, 신중(神衆)에 대한 중단 예불도 매우 중요하다는 방편설로 이해한다.

신중단 예배는 신중청(神衆請)을 통해 신중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도량을 옹호해 달라고 발원하는 의식을 진행한다. 이 신중청 의식에 거불(擧佛)이라는 것이 있는데 직역하자면 '부처님을 높이 받든다'는 의미이다. 이 의식은 도량을 정화하고, 신중을 청할 준비를 갖추는 예경의 절차라 하겠다.

 이 거불의 대표 구절이 나무 금강회상 불보살(南無 金剛會上 佛菩薩) 나무 도리회상 성현중(南無 忉利會上 聖賢衆) 나무 옹호회상 영기등중(南無 擁護會上 靈祇等衆)이다. 금강회상에 모인 모든 불보살에 귀의하고, 도리천 법회에 모인 성현들에게 귀의하며, 불법을 옹호하는 회상에 모인 영기와 여러 신중들에게 귀의한다는 의미이다. 먼저 불보살과 호법성중을 높이 받들어 모시고 신중을 청하는 순서로 되어 있다.

 관촉사 미륵보살상 오른쪽에는 대시주(大施主) 전태현(全泰賢)의 비가 세워져 있다.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저절로 경외감이 우러나는 거대한 보살상 앞에 세워진 탓일까! 이 비는 별로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언제 세워졌는지 무슨 연유로 세웠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옆 면에 대시주 전태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이 비가 시주비(施主碑)임을 알 수 있는데, 비 전면에는 금강회상 도리회상 옹호회상(金剛會上 忉利會上 擁護會上)이라는 문구가 세겨져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문구다. 그렇다. 이 문구는 앞서 언급한 신중단 의식의 거불에 나오는 구절이다. 의문이 생긴다. 전각 내부도 아닌 야외에 세워진 거대한 보살상 앞에 굳이 신중단 의식에서 거론되는 법회의 이름을 새겨놓은 까닭은 무었일까? 그것도 보살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비 형태로 세워둔 까닭은 무었일까?

 절마당에 겨울비가 내린다. 춥다.

 미륵보살상을 세우는데 엄청난 보시를 한 그 대시주는 자씨보살 (慈氏菩薩) 즉, 미래에 올 자비와 구원의 상징 뿐만 아니라 현재의 보호를 상징하는 불법의 수호자도 어떤 형태로든 형상화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여 좀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문자로나마 비에 세겨놓은 것이 아닐까! 미래에 올 구원자 미륵에게 경배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팍팍한 현재의 삶을 구원해 줄 영험한 '실무자'들에 대한 민초들의 믿음을 이렇게라도 반영해준 것은 아닐까? 따지고 보면 부증불감 아닌가! 

 비를 맞고 서 있는 자씨보살 뒷편에는 신중단의 불법(佛法) 수호신 처럼 바위들이 빙 둘러 서 있다. 다만 그 모습이 금강저를 든 위태천은 아니고, 각진 바위에 윤가 편가 조가 한가 김가 송가 등 낯 익은 성씨의 이름표를 달고 있다.

'절에 가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쌍계사 금당  (1) 2026.01.25
수선사(修禪寺)  (1) 2025.12.22
골굴사 마애여래좌상  (0) 2025.11.24
운문사 원응국사비명  (0) 2025.11.21
직지사 비로전 현판  (0) 2025.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