维基百科(zh.wikipedia.org)에서 辦公室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辦公室(office), 又稱辦公大樓, 寫字樓, 是一種讓人們在其中辦公(工作)的場所, 通常是房間的形態...이라고 검색된다. 우리말로 하자면 보통 방처럼 생긴 일하는 곳이라 할 수 있으므로 사무실이라고 번하면 적당할 것 같다. 우리에게는 사무실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만 중국에서는 판공실이 공무를 처리하는 곳 즉, 사무실의 의미로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중국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활동하던 시기에도 판공실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일테면 독립운동가 석린(石麟) 민필호(閔弼鎬) 선생이 1939년 5월 임시정부 김구 주석 판공실장 겸 외무차장에 임명되었다는 기록을 통해서 임시정부 조직에 판공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실과 비슷한 조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방 후 귀국하여 경교장(京橋莊)에 머물던 백범(白凡)은 많은 휘호를 남겼다.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전국 순회 강연을 진행하던 시기에는 교회와 학교 등에 휘호를 남겼고, 남북협상 추진 과정에서는 통일 염원을 담은 휘호를 작성하였으며 1949년 흉적의 총탄에 서거하기 전까지도 외교 인사나 단체에 휘호를 전달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백범 휘호는 단순히 서예 작품이 아니라 그의 철학과 시대정신을 담은 기록이자 해방 공간에서 우리 민족의 방향을 제시하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휘호에 방서(旁書)한 문구에도 백범의 철학과 염원이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백범의 휘호 대부분에는 大韓民國 二十九年 ㅇ月 ㅇ日 臨時政府 主席 辦公室 白凡 金九 와 같은 문구가 방서(旁書)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엄연히 1919년에 수립된 국가이고 침략자로부터 해방된 이후에도 우리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는 경교장이 임시정부의 주석 판공실임을 그가 쓴 글에 모두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 예시한 대한민국 29년은 1947이다. 이 떄 백범의 나이는 72세였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데 어찌하다 보니 가을이 깊어가는 시절에 마곡사(麻谷寺)에 들렀다. 백범당에 걸려 있는 행복(幸福) 휘호가 보고 싶었기 떄문이다. 개인적인 동기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시기인지라 많아지는 생각을 정리하는데 행복이라는 단어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존경하는 이로부터 확인하고 싶은 소박한 바람이 담겨 있기도 하다.
유난히 추워진 아침! 절마당 돌탑 위에 얹혀있는 풍마동(風磨銅) 위로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공활하기 그지없고, 명부전에서 흘러나오는 대원본존(大願本尊) 크시티가르바(Ksitigarbha)를 외는 스님의 염불소리는 애절하기 그지없다. 한 여인네가 진지한 표정으로 돌탑 가생이를 돌고 있고, 대광보전(大光寶殿)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은 경배하는 이들의 절을 받기 바쁘다. 그런 절집 경내를 지나 새로운 시작을 앞둔 눈 먼 나귀(할려 瞎驢) 하나가 백범당의 행복(幸福)) 휘호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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