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르다

지리산 뱀사골

samongeereem 2022. 10. 28. 20:43

1949년 2월 28일 이현상의 5백여 지리산유격대는 벽소령 중턱 빗점골을 출발합니다.  3.1절 기념 순회투쟁으로 화개장, 산청, 함양 등 인근 지역들을 공격합니다.  3월 하순에는 거창 십리능선에서 정일권 준장의 지리산지구사령부 대병력과 격전을 벌입니다. 7시간에 걸친 주력끼리의 대회전으로 탄약이 다 떨어진 유격대는 함양 괘관산으로 들어가 대열을 정비합니다. 이후 이현상부대는 50명 안팎의 소부대 단위로 나뉘어 점점이 지리산을 향해 이동합니다. 집결장소는 뱀사골 중턱의  병풍소입니다. 

4월 9일 자정이 넘은 시각 김지회의 지휘부 29명이 뱀사골 입구 반선리 금판정에 도착합니다. 지리산 주변 마을들을 이른바 '민주부락'으로 믿고 있던 그들은 주저없이 동네의 박과부댁 술도가로 찾아듭니다. 과부댁이 권하는 전내기술을 실컷 마신 일행은 곯아 떨어져 깊은 잠에 빠집니다. 토벌대와 이미 통하고 있던 박과부는 곧 산내에 주둔중인 3연대 3대대에 사람을 보내 유격대 출현을 신고합니다. 3대대는 곧바로 병력 60여명을 스리쿼터에 싣고 반선으로 달려가 김지회의 지휘부를 급습합니다.

이 날 김지회의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3기 동기인 홍순석을 비롯하여 후방부장 등 17명이 죽고 7명은 포로가 되었으며 김지회의 연인인 조경순을 포함해 5명만이 살아서 도망합니다. 그러나 조경순은 사흘 뒤 달궁마을에서 붙잡혔고 이후 전향하여 봉기군에게 투항을 독려하는 선무활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닷새 뒤에 인근에서 김지회의 시체가 수색대에 의해 발견됩니다. 14연대 대전차포 중대장으로 여수 순천 10.19사건의 주역인 김지회는 이렇게 죽었습니다. 

1947년 6월 김지회는 맹장수술을 합니다. 광주 도립병원 5병동 20호실에 입원해 있던 이 때 담당 간호사인 조경순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됩니다.

일년이 지나 제주도 대정 출신의 열아홉 조경순과 함경도 함주 출신의 스물넷 김지회는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한반도 남단과 북단의 두 젊은이가 우연히 환자와 간호사로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일구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피워낸 사랑의 불꽃은 너무도 짧게 타올랐다가 스러져 갔습니다.

조경순은 김지회와 애정이 깊어졌을 때 비로소 그가 공산주의자임을 알았다고 합니다. 독실한 예수교 장로인 조경순의 부친은 두사람의 결혼을 반대하였고 이를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애정과 사상 사이에서 애인을 포기할 수 없었고 그를 따라 입산할 수 밖에 없었을 그녀의 선택을 헤아려 봅니다.

어느덧 75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 때 그 시절 그 젊은이들의 모습을 곁에서 오롯이 지켜보았을 뱀사골 수목들은 오늘 골짜기마다 붉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 이태_여순병란, 오마이뉴스_여자빨치산 조경순 그녀는 아직 살아 있을까? 디지털거창문화대전_십리능선 전투)

2022.10.28일 뱀사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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