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감/가족

정의(貞儀) 여사(女史)

samongeereem 2026. 10. 18. 21:56

  원나라 간섭 시기에 충렬, 충선, 충숙, 충혜, 충목왕 등 다섯 임금을 섬기며 고려 후기 정계를 대표하는 대신으로 활동했던 국재(菊齋) 권보(權溥)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溥'라는 글자는 대개 '부'라고 읽지만 '보'라고도 읽습니다. 안동권씨 한글판대동보를 열람해 보면 '권보(權溥)'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1262년에 태어나 1279년 우리나이로 열여덟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그는 충선왕 5년인1313년에 영가군(永嘉君)에 봉해졌으며, 충숙왕 대에는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으로 진봉됩니다. 권보는 다섯 아들과 네 명의 딸을 두었는데 본인 뿐만 아니라 큰아들 준(準)은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둘째 종정(宗頂)은 광복군(廣福君), 셋째 고(皐)는 영가군(永嘉君), 넷째 재(載)는 계림부원대군(鷄林府院大君), 다섯째 겸(謙)은 복안부원군(福安府院君)으로 봉해지는 등 다섯 아들이 모두 군(君) 작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큰사위 안유충(安惟忠)을 제외하고 둘째 사위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은 계림부원군(雞林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셋째 사위는 순정대군(順正大君) 왕숙(王璹)이고, 넷째 사위는 회안대군(淮安大君) 왕순(王珣)입니다. 사위 세 명도 군(君) 작위를 받은 것이지요. 이로써 이른바 일가구봉군(一家九封君) 집안이 된 것입니다. 참으로 전례없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충선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권부의 큰아들 권준을 무척 총애하였는데, 권준으로부터 동생 권재의 이야기를 들은 충선왕은 권재를  만나보기도 전에 벼슬부터 제수하였다고 합니다. 충선왕이 어지간히 권준을 총애했던 모양입니다. 이후 권재의 알현을 받은 충선왕은 권재를 자신의 아들로 삼고, 왕씨 성과 함께 후(煦)라는 이름을 하사합니다. 안동권씨 대동보에 권보의 넷째 아들이 왕후(王煦)라고 표시되어 있는 까닭은 그가 충선왕의 양자가 되었기에 왕이 지어준 이름자로 표시한 것입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왕후의 손자 왕숙(王肅)과 그의 형제들은 권(權)씨로 복성을 결심합니다. 여기에는 증조부 권부의 후손으로 6촌형제인 권근(權近)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왕조 조선의 유교적 통치 기틀을 다지던 핵심 실세였던 권근(權近)이 가문의 중심에 있었기에 국재 가문임을 명확히 증명하고, 복성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왕숙은 권숙(權肅)이란 이름으로 출사하게 됩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1940년 한가위를 며칠 앞두고 김포 하성면 석탄리에서 정의(貞儀)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태어납니다. 그이는 앞에서 길게 언급한 권보(權溥)의 넷째 아들 왕후(王煦) 즉, 권재(權載)의 후손입니다. 족보를 뒤적여 보면 국재 권보의 21대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스무살에 혼인한 정의(貞儀) 여사(女史)는 딸을 무려 네 명이나 가진 딸부자집 마나님이 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네 명의 딸 중에서 셋째와 혼인한 이가 역시 권보의 후손입니다. 바로 권보의 셋째 아들 권고(權皐)의 후손입니다. 말하자면 정의 여사의 선조인 왕후(王煦) 즉, 권재(權載)의 셋째형 후손이라는 것이지요. 흥미롭네요. 그를 족보에서 찾아 보면 국재 권보의 23대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백년의 세월이지만 어쨋든 고려시대까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동일한 선조를 만나게 되는 장모와 사위 두사람은 촌수를 따져보면 44촌간이 됩니다. 44촌간이라니! 같은 성씨지만 참으로 먼 촌수입니다. 한편으로 항렬을 따져 보면 사위 입장에서 할머니 뻘 장모와 이모 뻘 마누라를 둔 셈이 됩니다.

 이 두 사람 인연의 시발점이 되는 국재 권보의 기록이 담긴 문건이 필자의 거실 책장에 꽂혀 있습니다. 국재실기(菊齋實記)라는 제목을 달고 있네요. 국재 할배요! 당신 땜에 장모도 있고 마누라도 있다는거 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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